2009년 11월 13일
지갑을 열어보니
500원짜리 하나와 긁기도 민망할 만큼의 돈이 들어있는 카드 두장이 있다.
빨래를 하려고 했지만 (해야 하지만) 빨래를 말릴 곳이 마땅찮아서 건조기(2500원)를 돌려야 하는데
그 돈이 없어서 빨래를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데이트를 하고 싶은 날이지만 저녁을 먹자고 하면 밥을 사는 건 고사하고 내 밥 사먹을 능력도 빠듯한데다
그 상황을 조리있게 빠져나갈 말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고 맵시입게 입고 나가자니 역시 입을 옷이 없다.
술이 문젠가.
어제는 없는 돈을 무리해서 결국 술을 먹었다.
오늘도 술을 먹으러 나갈 예정이라 역시나 돈을 저녁에 쓸 수가 없다.
저번에 저녁을 그것도 비싸게 얻어먹은 바람에 왠만한걸 먹을 수도 없다.
그래서 데이트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지만 속이 쓰리다.
집으로 데려와서 그냥 있는 반찬에 먹으려니 지하 단칸방에 별다른 찬도 없이 누군가를 초대할 만큼
낯짝이 두껍지는 못하다.
이정도 상황이 되었으면 이번달 방값과 밥 걱정에 돈 벌 궁리를 해야하는 게 맞지 않겠냐만은
그리고 조금은 이 상황을 슬프고 비참하게 받아들여야하지 않겠냐만은
옆집의 누군가, 다른 건물에 혹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모르는 사람의 일처럼 아무런 감흥이 없다.
아니 오히려 누가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는 얘길 듣는다면 오히려 걱정과 연민이 생길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자신을 향한 물음에 제대로 속이 시원해질 답을 해주지 못한다.
답, 이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또 할 말이 잔뜩인데 지금은 귀찮다.
어쨌든 조만간 일을 구해야 한다. 일단은 이번달 방값이 걱정이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위한 푼돈이야 간간히 생기기도 하고, 몇 끼 굶는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니기에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만
방에서 쫓겨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숙자의 생활에 대한 준비는 되어있지 않다.
노숙자의 생활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저번주였나, 아버지를 만나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어떤 작가는 노숙자가 나오는 글을 쓰기 위해 노숙자로써 몇달 혹은 몇년을 살았다고 한다.
가령 내가 노숙자의 생활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노숙자에 대한, 혹은 노숙자가 등장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이고 싶다.
방값을 마련하지 못해서 쫓겨나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노숙자중에 글을 쓰기 위해 집과 돈이 있음에도 글을 쓰기 위한 노숙자 따위가 있을리 없다.
누군가의 그런 행위는 노숙자는 놀리는 꼴이 아닌가.
방값을 마련하지 못해 쫓겨나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노숙이 노숙자의 노숙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노숙은 하고 싶지 않다. 음, 아니 노숙을 하고 싶지 않다기 보다는 노숙자가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일을 구해야겠다.
에휴
빨래를 하려고 했지만 (해야 하지만) 빨래를 말릴 곳이 마땅찮아서 건조기(2500원)를 돌려야 하는데
그 돈이 없어서 빨래를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데이트를 하고 싶은 날이지만 저녁을 먹자고 하면 밥을 사는 건 고사하고 내 밥 사먹을 능력도 빠듯한데다
그 상황을 조리있게 빠져나갈 말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고 맵시입게 입고 나가자니 역시 입을 옷이 없다.
술이 문젠가.
어제는 없는 돈을 무리해서 결국 술을 먹었다.
오늘도 술을 먹으러 나갈 예정이라 역시나 돈을 저녁에 쓸 수가 없다.
저번에 저녁을 그것도 비싸게 얻어먹은 바람에 왠만한걸 먹을 수도 없다.
그래서 데이트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지만 속이 쓰리다.
집으로 데려와서 그냥 있는 반찬에 먹으려니 지하 단칸방에 별다른 찬도 없이 누군가를 초대할 만큼
낯짝이 두껍지는 못하다.
이정도 상황이 되었으면 이번달 방값과 밥 걱정에 돈 벌 궁리를 해야하는 게 맞지 않겠냐만은
그리고 조금은 이 상황을 슬프고 비참하게 받아들여야하지 않겠냐만은
옆집의 누군가, 다른 건물에 혹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모르는 사람의 일처럼 아무런 감흥이 없다.
아니 오히려 누가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는 얘길 듣는다면 오히려 걱정과 연민이 생길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자신을 향한 물음에 제대로 속이 시원해질 답을 해주지 못한다.
답, 이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또 할 말이 잔뜩인데 지금은 귀찮다.
어쨌든 조만간 일을 구해야 한다. 일단은 이번달 방값이 걱정이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위한 푼돈이야 간간히 생기기도 하고, 몇 끼 굶는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니기에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만
방에서 쫓겨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숙자의 생활에 대한 준비는 되어있지 않다.
노숙자의 생활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저번주였나, 아버지를 만나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어떤 작가는 노숙자가 나오는 글을 쓰기 위해 노숙자로써 몇달 혹은 몇년을 살았다고 한다.
가령 내가 노숙자의 생활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노숙자에 대한, 혹은 노숙자가 등장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이고 싶다.
방값을 마련하지 못해서 쫓겨나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노숙자중에 글을 쓰기 위해 집과 돈이 있음에도 글을 쓰기 위한 노숙자 따위가 있을리 없다.
누군가의 그런 행위는 노숙자는 놀리는 꼴이 아닌가.
방값을 마련하지 못해 쫓겨나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노숙이 노숙자의 노숙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노숙은 하고 싶지 않다. 음, 아니 노숙을 하고 싶지 않다기 보다는 노숙자가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일을 구해야겠다.
에휴
# by | 2009/11/13 18:10 | 토사물 | 트랙백 | 덧글(2)



